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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을 만끽하고 온 발틱 3국
  • 구분/지역패키지 > 유럽
  • 조회수 782
  • 작성자 정**
  • 작성일 2018-11-05
  • 이미지
  • 관련상품epp034
    발틱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 러시아 (성페테르부르크)_ 4국 9일_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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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발틱 3국을 여행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EPP034와 EPP0344를 비교하다가 북유럽 여행 시에 이미 여행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단 하루 일정으로 되어 있는 EPP034로 결정하였습니다. 드루스키닌카이 온천이 포함되지 않아 가격도 EPP0344보다 10만원 정도 저렴합니다. 인솔자가 없어 여행사에서 보내온 메시지에 따라 짐을 챙기며 벌써 여행의 즐거운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2018년 10월 11일 17시 50분발 KE929 비행기는 2-4-2 좌석으로 만석이 아니라 누워서 편히 갈 수 있었습니다. 8박 9일 일정으로 가을을 만끽하러 발틱으로 출발!!!!
 
 
상트페테르부르크 폴코보 공항에 밤9시 50분에 도착, 시차가 6시간 있으니 10시간여 비행하였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공항도 한산하여 수속이 빨리 진행되었고 이마루 현지가이드와 만나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일행은 자매 3팀. 친구 1팀. 부부 3팀으로 모두 17명이었습니다. 그중 한국에서도 만나지 못한 선배 부부 팀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방가 방가^^
 
공항에서 30분 정도 이동하는데 안개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습지에 만든 도시라더니... Azimut Fantanka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호텔에 도착하니 일정을 함께 할 김영만가이드님이 방을 배정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듬직해 보이는 인상으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잠만 자고 내일부터 일정이 시작됩니다. 호텔은 깨끗하고 조용하였습니다. LG TV와 밑에 장식된 많은 고리가 인상적입니다.
2일차 2018.10.12()
6시 모닝콜, 7시 아침식사, 8시 출발
상트페테르부르크팔름세 라헤마 국립 공원 탈린 구시가지 호텔
 
음식의 이름을 써 붙인 친절한 호텔입니다. 처음 보는 음식을 접시에 담아왔더니 오징어와 버섯입니다. 첫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침식사 후 2시간 반 정도 달려 러시아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국경에는 자가용과 트럭이 줄이 길지만 우리는 버스라인으로 앞에 1대만 있었습니다. 차에 경비원이 올라와서 여권 사진 검사하고, 우리가 내려서 출국 도장 찍고, 경비원이 올라와서 출국도장 확인하고.... 에스토니아 입국 까지 2시간여 소요 되었습니다.
 
 
에스토니아에 도착하여 바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호텔에 달린 식당이었는데 샐러드와 스테이크 감자, 아이스크림까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첫 관광지로 팔름세에 갔습니다. 중세시대 영주들의 삶을 볼 수 있는 곳으로 1697년에 주 건물이 세워졌으나 그 후 불이 났고 1782~ 1785년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발틱 독일인의 생활을 볼수 있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밖만 구경할 수 있고 실내는 따로 표를 구입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냥 들어갔지요. ㅋㅋ
 
                  <입구>                                                                <목욕탕>
 
 
 
20여분을 버스를 타고 라헤마 국립공원에 왔습니다. 의욕이 넘치는 김영만 가이드님은 앞장서서 나무에 녹색표시를 보고 나올 때 잘 나와야 한다고 몇 곳의 갈림길에서 주의를 줍니다. 늪지대가 있어 나무로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들어가서 늪지대를 밟으면 푹신푹신하다고 합니다. 나무도 울창하고 일년에 0.01mm가 자란다는 이끼가 있습니다. 조용하고 산책하기 좋은 공원입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지정된 탈린 구시가지에 들어옴을 알리는 비루문이 있습니다. 탈린에서도 유명한 식당이라는 올데한자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컴컴해서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그래도 초저녁인데 사람이 많은 걸 보니 꽤 유명한 식당인가 봅니다. 전통음악도 연주하고..... 식사 후에 탈린의 간식 설탕 조림 아몬드도 한봉지 씩 주었습니다. 가이드님이 꼭 해보라고 하던 화장실의 손닦기 주전자가 흥미롭습니다.
 
 
버스를 먼저 보내고, 걸어서 호텔까지 투어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탈린 구시가지를 내려다보려 코투오차 전망대로 올라갑니다. 바닥에 깔린 자갈들과 빨간 지붕들이 중세의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여기에 올라오면 시청 첨탑에 있는 토마스 할아버지라 불리는 풍향계도 볼 수 있습니다.
 
 
톰페아 언덕을 내려오면서 돔성당을 보았습니다. 돔성당은 덴마크 발데마르 2세가 탈린 지배 때 덴마크인들이 교회가 필요하여 1219년 카톨릭성당을 지었는데 꼭대기에 1772라고 쓰여 있는데 종탑 부분이 그 해 건축한 것을 나타냅니다.
조금 더 내려와 탈린에서 가장 크고 잘 보존되어 있는 러시아 정교회의 알렉산더 넵스키 교회의 화려한 외관을 보았습니다. 내부는 의자가 없는데 이는 신 앞에서 인간이 앉을 수 없다는 뜻이랍니다.
 
 
 
넵스키 교회 옆의 분홍색 건물은 중세 십자군에 의해 지어져 13~14세기 탈린의 황금기에 바로크양식의 툼페아 성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에스토니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덴마크 왕의 정원(Taani Kuninga Aed)으로 1219년 발데마르 2세가 에스토니아를 점령하고 요새를 설치한 곳입니다. 발데마르 2세는 린다니세 전쟁 중에 하늘로부터 붉은 바탕에 흰색의 십자가가 내려와 덴마크 왕의 손에 쥐어준 후 전쟁에 승리하였다고 하는데 그 깃발이 전해진 장소가 이곳이랍니다. 정원을 둘러싼 타원형의 망루는 ‘Kiek in de Kok’라는 탑으로 ‘부엌을 들여다 보라’라는 뜻으로 망루에 올라가면 남의 집 부엌이 보일 만큼 높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네모진 유리창이 있는 건물은 네이치토른(NEITSITORN처녀의 탑)이라고 하는데 이곳을 경비하던 장군이름 Hinse Meghe를 따서 Meghedetom이라 불리던 것을 독일 사람들이 Madchen(아가씨) Turm(탑)이라고 잘못 부르면서 굳어진 이름입니다. 얼굴 없는 3명의 수도승이 어두운 분위기를 음산하게 합니다. 탈린이 ‘덴마크인들의 도시’ 라는 뜻의 타니 린에서 붙여졌다고 하니.... 역사를 거스르지 않는 이들의 생각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덴마크왕의 정원에서 계단이 많은 '숏다리'를 내려와 성 니콜라스 교회를 지나 시청사로 다시 내려 왔습니다. 저녁 7시가 넘어 라에코야 시청광장은 불빛이 아름다웠습니다.
 
 
KGB의 감옥이었다는 건물을 지나 1549~1629년에 건축된 건물로 123.7m의 첨탑으로 유명한 성 울라프 교회(Oleviste)를 지나 세자매 건물로 왔습니다.
이 건물은 외벽이 여성적인 아름다운 분위기를 가져 세자매라 부른다는데 벽위에는 물건을 올리는 도르래가 있습니다. 도둑과 쥐를 막기 위해서랍니다.
 
 
마지막으로 마가렛 성탑으로 갔습니다. 탈린 북부지방을 수호하기 위해 만든 성탑으로 벽의 두께가 6m로 뚱뚱한 마가렛 성탑이라고도 부릅니다. 현재 무기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합살루 가는 길에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뒤에 보이는 첨탐 건물이 성 울라프 교회(Oleviste)입니다.
 
 
 
Hestia Ilmarine호텔에 도착해 짐가방을 가지고 가야하는데 버스가 오지를 않아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일찍 버스를 호텔로 보냈는데 뭔가 잘 안맞았나 봅니다. 버스가 호텔 입구까지 갈 수 없어 많이 걸어 들어갔습니다. 호텔은 무척 크고 깨끗하며 호텔 근처에 Rimi라는 큰 마켓이 있어 맥주(1.59, 1.89유로)와 망고(1.59유로)를 사서 먹었습니다. 호텔에 수건 열선이 있어 좋았습니다. 생수 커피폿은 없습니다.
벽에 공장 사진이 많아 물어보니 공장을 리모델링한 호텔이라고 합니다.
 
 
 
3일차 2018.10.13()
6시 모닝콜, 7시 아침식사, 830분 출발
카드리오 궁 합살루 역 합살루 대주교성 파르뉴 해변 리가 시가지 호텔
 
조용한 아침식사를 하였습니다. 요구르트, 과일, 커피와 빵이 있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카드리오궁으로 갔습니다. 외관을 본다고 하여 별 생각 없이 갔는데 들어가는 길의 단풍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일행분들도 흩어져서 제각기 사진 찍느라고 여념이 없습니다. 러시아가 1711년 에스토니아를 점령한 이후, '유럽으로 열린 러시아의 창문'이란 이름으로 요새들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곳은 특히 아름다운 해안과 모래사장이 어우러진 여름 휴양지로 그 당시 러시아 대제였던 표트르 대제가 그의 아내 예카테리나를 위해 만들었으며 '예카테리나의 계곡'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 명칭이 에스토니아어화하여 'Kadriorg'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겨울이 길고 햇빛이 부족하여 나무들이 햇빛을 보려 죽죽 위로 길게 자란답니다.^^
 
 
떠나기 싫은 가을 숲속을 뒤로 하고 합살루 역으로 갔습니다. 에스토니아 기차역 중에 가장 아름다운 역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철도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김영만 가이드님이 사진이 잘나온다고 알려준대로 푸른색의 기차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으로 에스코니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중세 성곽인 합살루 대주교성으로 갔습니다. 13세기 말부터 1559년까지 합살루를 포함해 에스토니아 서부지역의 가톨릭 성당을 관장하는 주교가 거주하던 성으로 16세기에 성 외벽과 대포 등을 완성함으로써 지금 현재의 모습이 이루어졌습니다. 성안에 있는 교회는 니콜라스 돔교회인데 1560년 루터교가 국교인 스웨덴이 에스토니아를 지배 하면서 루터교가 되었습니다. 내 필름은 여기까지입니다. 사진 중앙의 철문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다 넘어져 얼굴을 다쳤습니다. 일행 중 간호사선생님이 치료와 연고를 주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이었지만, 식사의 불편과 통증을 견디고 무사히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해 응급실로 갔더니 광대뼈가 골절이랍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여행을 좀 더 조심해야겠습니다.
 
 
버스로 이동하여 오후 1시 45분경 파르뉴에 왔습니다. 발트해변에서 자유시간을 잠깐 가졌습니다. 나는 아까 다친 곳에 마스크를 썼습니다. 왼쪽 빰을 많이 다쳐 윗 잇몸이 아프고 퉁퉁하게 느껴집니다.
 
 
오늘은 늦은 점심을 뷔페로 먹었습니다. 나는 이가 아파서 스프와 닭고기, 완두콩을 조금 먹었습니다. 앞으로 2시간 30분 정도 차를 더 타고 1919년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들어갑니다. 김영만가이드님이 리가에 들어가는 길에 이곳의 교통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유럽은 대부분 전차가 아직 많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발틱은 추워서 도로가 얼었다 녹으면 빨리 갈라지기 때문에 흙과 돌을 철로 사이에 깔아 이를 방지한다고 합니다.
 
 
 
가이드님이 추천하는 중앙시장을 갔습니다. 비행기 경납고로 사용했던 곳인데 생선가게가 엄청납니다. 가이드님이 맛있는 맥주와 연어 절임을 사주었고 한국에 가져 갈 수 있도록 진공포장 잘해 주는 상점까지 소개해 주었습니다. 연어가 쫄깃하고 한국에 가져와 먹어보니 짜지 않고 기름이 엄청 많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불포화지방^^ 주방세제로도 잘 닦아지지 않는!!!
 
 
중앙시장을 지나 시청광장으로 들어왔습니다.
유럽은 광장의 문화라고 했습니다. 광장중앙에는 롤란드 석상이 있는데 한명의 악사가 풍부한 성량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롤란드는 샤를 대제의 스페인 원정 시 싸우다 전사한 영웅으로 롤란드가 들고 있는 칼의 끝 부분이 라트비아의 거리 원표가 되고 있습니다. 리가 시청은 1334년 건축하여 1756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고 세계 2차 대전 때 파괴되어 1960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 되었습니다. 검은머리 전당 오른쪽 옆에 있는 검은색 건물은 점령박물관입니다. 1970년 소련 연방시절 세운 것으로 라트비아 붉은 소충수 기념관 이었다가 독립 후 점령기념관으로 바뀌었습니다.
 
 
 
광장에서 장식이 화려한 건물은 검은머리 전당입니다. 이 건물은 중세 14세기 무역인 모임 길드가 쓰던 건물로 숙박과 모임의 장소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름이 검은머리인 이유는 이집트 출신인 흑인 성인 모리셔스가 그 길드의 수호신이었기 때문입니다. 1334년에 지어져, 1941년 2차 대전 때와 1948년 러시아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99년 새로 복원되었음을 천문시계 위 숫자에서 알 수 있으며 풍향계 윗부분의 황금빛 장식은 용을 찔러 죽이는 기사상은 로마출신 순교자 성 게오르그로 검은머리 길드의 수호신의 또 한사람입니다. 출입문의 왼쪽은 성모자상, 오른쪽은 선장복을 입은 모리셔스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전당 앞쪽 광장 바닥에는 세계 최초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던 것을 기념하는 포지석이 낮게 설치되어 있습니다. 2013년 리가성이 불이 났고, 현재는 대통령의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청 광장에서 보이는 성베드로 성당은 1209년 착공되어 1941년 완성되었습니다. 성베드로에게 헌정된 카톨릭 성당이었으나 독일의 영향으로 루터 교회로 변경되어고 첨탑 꼭대기에 루터교를 상징하는 수탉이 있습니다. 123m의 첨탑은 건축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탑이었으며 재건축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시내를 전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발트해의 진주라 불리우는 리가는 식물의 줄기 등 자연의 아름다운 곡선을 표현하는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을 20세기 초 리가 700주년을 기념하여 750여개의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제 어두워졌습니다. 돔성당을 지나갑니다. 발트 3국 중 가장 큰 성당으로 1211년 건축하였는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하여 15C 고딕양식, 18C 바로크 양식, 20C에 아르누보 양식이 더해졌습니다. 첨탑 높이 90m로 6878개 건반의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합니다. 역시 루터교로 위에 수탉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유난히 첨탑이 많기도 합니다.ㅋㅋㅋ
그래서 핸드폰으로 건물을 다 잡기가 어렵습니다.
 
 
 
다음은 각기 다른 양식으로 나란히 세워져 묘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삼형제 건물입니다. 왼쪽의 흰색 건물은 유리창 수로 세금을 매겼던 15세기에 지은 리가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용 석조 건물로 현재 빵집으로, 노란색 건물은 16세기에 지은 것으로 현재 라트비아 건축박물관으로, 오른쪽 연녹색의 제일 작은 건물은 18세기에 지은 것으로 창작센터와 사물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4층으로 된 건물인데 외관은 5층으로 보입니다. 이 또한 2차 세계 대전 때 파괴되어 1950년 재건축한 것입니다.
 
 
 
나오면서 국회의사당을 지나 카츄 마야로 왔습니다. 예전에 이 건물의 주인이었던 한 상인이 길드에 가입을 하려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화가 난 주인은 항의를 표시하려고 고양이의 꼬리를 대길드 건물에서 보이게 설치하였습니다. 지금은 방향을 틀었다고 합니다. 스토리가 재미있습니다.
 
 
 
리가를 둘러싸고 있는 방어용 성벽에 화약탑이 있습니다. 1330년부터 모래탑으로 불리다가 16세기에 전쟁에 대비한 화약저장고로 사용된 곳으로, 1621년 스웨덴 점령 당시 거의 파괴되어 1650년 재건축된 것으로 붉은 벽돌로 되어있습니다. 현재는 전쟁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옆에는 스웨덴 막사 건물 벽에 아름다운 리가의 길드 문장들을 그린 문장탑이 있습니다.
1935년 라트비아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세워진 42m의 자유기념비입니다. 맨 위 푸른색 조각상은 라트비아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 밀다의 모습으로 떠 받치고 있는 3개의 별은 라트비아를 구성하는 3지역(쿠제메, 비제메, 라트갈레)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1989년 8월 23일 발트 3국의 국민들은 620Km에 달하는 길 위에 서로의 손을 잡아 인간의 띠를 만들어 독립과 자유를 외쳤습니다.
 
 
 
저녁으로 5가지 요리가 나오는 중국음식을 먹었습니다. 국물요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9시쯤 Bellevue Park Hotel에 왔습니다. 깨끗하고 커피포트가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식사마다 후식이나 커피가 나와 별 필요 없었지만 3박자 커피를 타서 버스에서 한 모금씩 마시면 간식을 하지 않는 우리에게 다소 지루함을 달랠 수 있습니다.
 
 
4일차 2018.10.14.()
6시 모닝콜, 630분 아침식사, 730분 출발
구스마니스 동굴 투라이다 성 룬달레 성 십자가 언덕 카우나스 시가지 호텔
 
6시 30분 이른 아침인데 신선한 채소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부드러운 음식으로 머핀을 커피에 녹여 먹었습니다.
 
 
시굴다의 투라이다성의 8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9시에 오픈 한다고 들어오지도 못하게 합니다. 쌘스쟁이 가이드님!!! 불평이 나오기 전에 옆에 조금 떨어진 구트마니스 동굴에 가자고 일정을 조정합니다. 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동굴로 길이 19m 너미 12m 높이 10m이며 주위는 자연경관이 아름답습니다.
가는 길에 구트마니스 동굴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가이드님이 토해 줍니다.
1601년 투라이다 성이 스웨덴에게 점령이 되었습니다. 스웨덴 군인인 그레이프는 사망자들 사이에서 죽은 어머니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발견하고 발견한 5월을 의미하는 마이야(Maija)라 이름을 지었는데 빼어난 외모로 사람들은 ‘투라이다의 장미’라 불렀습니다. 마이야는 빅토르 헤일이라는 정원사와 매일 저녁 구트마니스 동굴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야쿠봅스키 폴란드 군인이 마이야에게 반해 빅토르의 이름으로 구트마니스 동굴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속은 것을 알은 마이야는 아무리 강한 검으로 찔러도 마법의 힘이 있는 붉은 스카프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며 시험을 해보기를 권합니다. 결국 마이야는 죽고 이에 놀란 야쿠봅스키는 숲으로 달려가 목을 매어 자결하였고 빅토르는 마이야를 투라이다 장미의 묘에 묻었고 그 자리에서 보리수가 자랐고 후대 사람들은 결혼 후 이 곳에 꽃을 헌화하는 풍습이 생겼다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마이야의 시신은 지금 투라이다 성당 옆 언덕에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동굴의 입구에는 ‘사랑의 맹세 집’이 있고 동굴의 저 높은 곳까지 연인들의 맹세가 새겨져 있습니다. 1812년에 새겨진 맹서를 보았습니다.
 
 
 
다시 투라이다성 매표소에 도착했습니다. 이 성은 13세기에 독일인들이 리브인들을 경계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걸어 올라가는 길에 구트마니스동굴의 비극의 주인공 마이야의 19세(1601~1620)의 죽음을 밝히는 무덤이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의 단풍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메인타워는 높이 42미터로 좁은 통로를 따라 올라가면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있습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룬달레 궁전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궁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는데 압도적인 궁전의 크기와 분위기에 품위를 지켜야 할 것 같았습니다. 생선의 부드러움과 향기, 후식이 여행 중 최고의 음식이었습니다.
라트비아의 베르사이유라고 불리우는 룬달레성은 1736년에 착공하여 1768년에 완공된 바로코 양식 건축물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을 건축한 이탈리아 바톨로메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li)가 에른스트 요한 폰 뷔렌(Ernst Johann von Buhren) 공작의 여름 궁전으로 지었습니다. 1795년 러시아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예카테리나 2세는 자신의 연인인 주보프공에게 이 성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보프가 일찍 죽고 그의 동생과 연인이 되어 궁전을 더욱 꾸미고 넓혔다고 합니다. 1차 대전 때는 독일이 병원과 사령관 사무실로, 라트비아 독립전쟁 시는 학교로, 1933년 라트비아 국립역사 박물관이 인수, 2차 대전시는 곡물 창고와 학교체육관으로 많은 수난을 거쳐 1972년 룬달레궁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황금의 방, 무도회장인 흰방 등 138개의 방이 있고 가구와 조각품 도자기, 그림, 실내 장식 등으로 화려합니다.
 
 
 
룬달레 궁전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덧신을 신어야 합니다. 먼저 표를 검사하고...
 
 
 
황금의 방에 들어왔습니다. 이 방은 궁전 외부 손님들의 알현장으로 쓰였습니다. 두 가지 색 대리석을 바탕으로 황금색 스투코(stucco 치장벽토)로 벽을 꾸미고 천장은 천지창조를 연상시키는 이탈리아 프란체스코 마르티니와 카를로 주키가 그린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긴 복도를 지나는데 우아한 천장 그림과 장식들로 기분이 좋습니다.
 
 
 
백색의 방입니다. 처음에는 예배실로 사용하다가 무도회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깨끗한 흰색으로 장식되어 있으니 화려한 옷을 입고 춤을 추던 귀족들의 움직임이 돋보였을 것입니다. 천장에는 황새가 둥지의 새끼에게 먹이는 주는 섬세한 조각이 있습니다. 황새는 라트비아의 국조(國鳥)로 우리가 아기를 다리 밑에서 주워온다고 하듯이 라트비아는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준다고 할 정도로 행운을 뜻하는 새인가 봅니다.
 
 
 
사진이 많은 방으로 왔습니다. 사진에 따라 설명을 붙여 좋았는데 글씨도 작고 영어가 아니라 읽기 힘듭니다, 한국어 설명을 주면 좋을텐데..... 이따 정원을 구경할 때는 꼬마 전동차에  한국어 설명이 나옵니다.
각방에는 많은 도자기가 있는데 특히 사각형의 큰 벽난로(?)가 인상적입니다.
 
 
 
다음은 장미의 방입니다. 갑자기 핑크빛으로 바뀌었습니다. 봄과 꽃의 여신 플로라를 주제로 벽에 스트코(치장벽토)로 이탈리아 화가 프란체스코 마르티니와 카를로 주치가 입체적으로 장식하였습니다. 벽 장식은 베를린 조각가 미셀 그라프에 의해 1760년대에 장식되었습니다.
 
 
 
다음은 목욕탕입니다. 우리나라의 매화틀 같은 것도 있었답니다.
 
 
 
공작의 침실입니다. 침대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가는 길에 많은 예카테리나와 남편 표트르 3세 초상화도 보고 창을 통해 정원을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식당으로 사용한 마블방입니다.
 
 
 
한 층을 내려와 보존하고 있는 룬달레성의 실제 조각품을 보았습니다. 위에 전시된 것은 대부분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자유롭게 보고 출구를 찾아 정원으로 나왔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넓은 정원이 펼쳐집니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삼은 프랑스식 정원으로 지금은 10월 말이라 꼬마 열차가 중단되었다는데 가이드님이 특별히 불러 우리만 정원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앞 유리창에는 언어 지원이 되는 나라의 국기가 붙어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어로 설명을 들으며 15분 정도 정원을 구경했습니다. 정확한 위치에서 설명이 나오기 때문에 속도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ㅎㅎ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슈레이로 이동하여 십자가 언덕에 도착했습니다. 십자가 언덕이 생긴 기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종교가 금지되었던 소련 지배때에 밤 낮으로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졌지만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종교적 힘으로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한 성스러운 장소로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여 이 지역을 평화, 사랑, 희생의 상징으로 선포했으며 현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제일 먼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이 있고 나무로 만든 예수님도 손을 벌려 맞이해 주고 있으며 셀 수 없을 만큼의 수많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왼쪽 언덕에는 벽이 없는 아주 작은 성당도 있습니다.
 
 
 
리투아니아 중세 고딕 양식을 잘 나타내는 페르쿠나스 집으로 왔습니다. 15C 독일의 한자동맹 상인들이 건축하여 사용하다가 16세기에 예수회에 매각되어 교회로 개조 되었고 19세기에는 학교와 극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818년 보수 공사 중에 벽안에서 전통신앙의 최고신으로 천둥을 관장하는 페르쿠마스의 형상으로 추정되는 조각이 발견되어 페르쿠나스 집으로 부르게 되었답니다. 초기에는 길드연합회 그 후 예배당, 드라마극장으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로 옆 비타우타스 가톨릭성당이 있습니다. 성당 앞에 네만강이 있는데 홍수 피해가 많아 흰색으로 홍수 수위를 알 수 있는 눈금이 벽에 있습니다.
흰백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 구시청사입니다. 1542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립되었지만 그 후 고딕 양식이 혼합되었습니다. 성당, 감옥 등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지금은 결혼식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길에 비타우타스 다리를 보았습니다. 리투아니아 역사에서 가장 추앙받는 인물인 비타우타스 대공작의 이름을 따서 비타우타스 다리로 불리는데,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가톨릭 폴란드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제정러시아를 연결하는 국경 다리인지라 이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 폴란드 땅으로 넘어가면 자그마치 13일이나 차이가 났답니다. 그래서 이 다리는 건너는데 13일이나 필요하다 해서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Best Baltic Hotel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내려와 호텔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녁을 빨리 먹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마켓을 갔습니다. 구글지도에는 eastern city라고 나와 있는데 우리나라 마켓보다 더 큰 것 같습니다. 별 살 것이 없어 망고만 2개,,,,ㅋㅋ
호텔 앞의 리투아니아 국기는 3색으로 노랑, 초록, 빨강인데 태양, 대지, 피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5일차 2018.10.15.()
6시 모닝콜, 7시 아침 식사, 8시 출발
드루스키닌카이 숲의 메아리 트라카이 성 빌뉴스 시가지 호텔
 
모닝콜이 온 호텔입니다. 발칸은 아침에 모닝콜을 잘 안 해줍니다. 꼭 핸드폰을 맞추고 자야합니다. 역시 오늘도 아침을 잘 먹었습니다.
 
 
 
1시간 5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드루스키닌카이 숲의 메아리에 왔습니다. 호수, 강, 언덕, 숲이 어울려 나무조각 공원을 만들었는데 숲속에 있어 성수기에는 차가 어떻게 왕래를 할 지 걱정될 정도였습니다. 안타나스 체스놀리스 조각가가 만든 목각 작품을 숲속에 전시해 놓은 것인데 규모가 제법 큽니다. 입구에 ‘안녕’ 한글이 맞이합니다. 풍차의 왼쪽으로 돌아야하는데 우리는 역방향으로 돌았습니다. 사람이 없어 한가롭게 보았습니다.
공원 가운데 인공연못과 민속공연장이 있는데 악어 조각상을 지나가면 창에 찔린 듯 한 소리가 나고 어딘가 지나가면 노래도 나오고 센서로 음향효과까지 연결 시켰습니다.
 
 
 
큰 거인이 돌을 날라서 예수상이 있는 돌담을 쌓았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포튼한 품에 앉으면 시냇가의 냉풍이 불어 올 듯도 합니다.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이란 주제의 4번째 공간입니다. 세례식, 결혼, 장례의 과정을 표현하였습니다. 3번째 공간은 남자와 나무의 인생이란 주제인데 순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ㅋㅋㅋ
돌담길의 돌 사이에는 리투아니아 전역에서 모아온 예수상이 있습니다.
 
 
 
나오는 길에 공원을 만든 작가 안타나스 체스놀리스와 사진도 찍고 못본 박물관도 뛰어가서 보고 나왔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트라카이성으로 왔습니다. 갈베 호수에는 20여개의 섬이 있는데 그중 트라카이 성의 붉은 벽돌과 뾰족한 지붕은 호수와 어울려 그림과 같은 성입니다. 15세기에 건축된 성으로 1655년 스웨덴과 연합군의 침입으로 성의 일부가 파괴되고 방치되었다가 1962년에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복원 발굴이 시작되어 1987녀에 완료되었습니다. 그래서 벽의 위 아래 벽돌이 다릅니다. 성 안을 구경하려고 선택을 하였는데 마침 월요일은 휴관하는 날이라 주변만 돌아보았습니다. 선택 관광으로 요트를 타러 간 사이 우리는 산책을 하였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호숫가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갔습니다. 만두 같은 것을 먹었는데 나는 속만 먹었습니다. 트라카이성 입장을 못한 대신 가이드님이 포도주를 사 주었습니다.
 
 
 
발트3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리투아니아는 1991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하였고 수도인 빌뉴스는 붉은색 벽돌로 치장한 바로코 양식을 주로 이루고 있으며 구시가 전체가 1994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 받고 있습니다.
먼저 새벽의 문으로 왔습니다.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 초기에는 도시를 지키는 요새의 일부분이었는데 성벽의 문으로 만든 5개의 문 중 유일하게 남은 문입니다. 2층에 검은 오크로 만든 성모마리아 상을 가져다 놓았고 그 성화는 기적을 행하는 성화로 알려져 리투아니아의 성지로 꼽힙니다. 반짝이는 금박에 쌓여있습니다.
 
 
 
현지 로칼 가이드 루카스와 합류했습니다. 2명의 안내는 일행과 떨어질 염려가 적어 안심됩니다. 새벽의 문 위에 있는 작은 예배당의 본당으로 1633~ 1654년에 건축된 성 테레사 성당입니다. 내부은 특이하게 분홍색을 바탕으로 금색 테를 두른 화려한 장식으로 조각품도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러시아 정교회 성령교회입니다. 특이하게 초록색으로 제단이 꾸며져 있고 앞 유리단 속에 3명의 유골이 있습니다. 신발까지 신은..... 차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바실리안 문을 지나 그리스 정교회 건물로 들어왔습니다. 정말 초라한 교회였습니다. 벽이 다 무너졌는데 보수도 하지 않은....
 
 
 
성 카지미엘스 성당은 빌뉴스에서 가장 오래된 바로크 양식 건축물입니다. 검은 왕관은 러시아 정교회로 사용될 때 건축된 것입니다. 가까운 거리에 각자 다른 신앙의 교회가 모여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지나가면서 구시청사도 외관만 보았습니다. 15세기에 세워졌는데 지금의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졌고 지금은 영빈관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시청 광장을 지나 카페에 앉았습니다. 김영만 가이드님이 음료 주문을 받고 배달까지 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커피와 당근 사과 쥬스를 시켰습니다.
 
 
 
문학인의 거리로 리투아니아의 책 저자들의 책자 표지를 벽에 진열해 두었습니다. 그중 우리나라의 욕에 해당하는 손가락 모양의 책자는 정부를 비판하는 책 표지라고 합니다.
 
 
 
성 안나 성당은 1501년 지은 붉은 벽돌로 건축한 고딕 양식건물입니다. 1812년 러시아를 정벌하러 가던 나폴레옹이 손바닥에 얹어 파리로 가져가고 싶다고 한 성당입니다.
 
 
 
대통령궁 바로 왼쪽으로 바로 빌뉴스 국립대학교가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정서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건물의 간격과 보안 문제입니다.
438년 전통의 빌니우스대학교는 1579년에 설립된 발틱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입니다. 이곳은 중세기부터 리투아니아 대주교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고 하는데 제정 러시아 시대에는 리투아니아 지역을 관할하던 사령관들의 관저로 사용하였고 1812년에는 러시아로 향하던 나폴레옹이 하루 묵어간 곳이기도 합니다.
 
 
 
빌니우스 대성당은 네모꼴의 로마신전 형태로 지붕 위에는 성 헬레나, 성 카시미르, 성 스타니슬라우스 3명의 성인을 세웠습니다. 벽면에는 마태는 사람. 마가는 사자, 누가는 소, 요한은 독수리와 함께 복음 성인을 세웠습니다. 또 바오르2세가 축성하는 모습의 사진이 있습니다.
발트의 길 (Baltic Way)시작점 표시 발자국이 있는데 나는 못 보았습니다. 1989연 9월 23일 빌니우스 ~ 리가 ~ 탈린을 있는 인간 사슬로 200여 만명이 손을 잡고 620Km의 인간 사슬을 만들어 소련 연방으로부터의 자유를 평화적 시위로 50년의 소련 지배로부터 1991년 독립한 사건의 첫걸음을 상징한 발자국입니다.
광장에는 게디미나스 대공의 동상이 있습니다. 분열된 리투아니아를 통일하고 러시아의 몇 지역을 통합하여 리투아니아와 러시아의 왕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옆에는 철갑을 두른 늑대가 있습니다. 게디미나스 대공이 네리스 강변 들판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 꿈에 이 늑대가 나타나 울부짖었고 그 꿈의 해몽으로 수도 빌리우스를 세웠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퇴근 시간의 교통체증이 조금 있습니다. 저녁 6시 30분쯤 Loop Hotel에 도착했습니다. 호텔이 공사 중이라서 왼쪽 식당 카페 있는 쪽으로 들어갔는데 호텔은 깨끗하고 좋았습니다. 천장이 시멘트가 다 보이게 하는 컨셉입니다. 여행가방 펼치기도 가장 좋았던...... 가방을 놓고 내려와 저녁을 먹고 우리는 마켓을 가려고 나왔습니다. 이번 여행 오신 2부부팀과 같이 동행하게 되었는데 구글에서 찾은 한인마켓을 찾다 찾다 못 찾고 현지 마켓으로 뒤늦게 발길을 돌렸습니다. 한국사람도 별로 없는데 웬 한인마켓일까 의아했는데 할인마트를 잘못 쓴게 하닌가 생각했습니다. 마켓에서 싱싱한 찌리모야를 사세 맛있게 먹었습니다.
 
 
6일차 2018.10.16.()
6시 모닝콜, 7시 아침 식사, 8시 출발
다우가프필스 요새 레제크네 요새 타르투 시가지 호텔
 
출발 전 여행사의 안내에 호텔 식당에서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담아가지 말라는 안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호텔은 직원이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받아다 주었습니다. 너도 나도 다 하면 실례가 되긴 하겠죠!!!!
잘 씹지를 못하는데 바나나와 포도, 메론이 있어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오늘은 버스는 그대로 두고, 조지 기사님에서 니콜라스 기사님으로 바뀌었습니다. 기사님 두 분 다 운전을 잘하고 가이드님 하고도 잘 지내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아침에 빌리우스를 빠져 나오는데 교통 체증이 있습니다.오늘은 비교적 장거리인 다우가프필스 요새로 3시간 30분 정도 차로 가야 합니다. 중간에 화장실을 갈겸 가이드의 핸드폰 충전을 위해 쉬었습니다. 여기에도 Rimi가 있습니다. 8-22가 처음에 건물 번지인 줄 알았습니다.ㅋ ㅋ 오픈 시간이랍니다. 큰 상가가 있는 도로변에 내려 2층 화장실을 갔는데 0.3유로씩 내어야 합니다. 상가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
 
 
 
다우가프필스 요새에 11시 30분쯤 도착했습니다. 1577년 이반 대제의 명령으로 성곽이 최초로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 증축을 거듭하여 현재의 모습은 러시아 1810년 알렉산더 1세 때 러시아 제국의 서부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서 건설을 명한 것으로 1812년 나폴레웅 군대가 다우가우필스를 함락하자 완공되지 못했고 1833년 니콜라스 1세대 완공되었습니다. 요새는 해자를 별 모양처럼 휘감는 성벽과 웅장한 성채, 소방서, 군사 시설, 요새 안에 사는 주거 거물 공공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어 러시아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 서유럽의 침공에 대항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학생들이 실내에서 체험학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점심 먹으러 호텔로 들어왔습니다.
 
 
 
레제크네는 1285년 리보니아 기사단이 돌로 요새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19세기 모스코바-리가, 바르샤바-상트페테르부르크 철도가 건설되면서 성장한 도시이지만 2차 세계 대전 시 독일군과 소련군의 공격으로 크게 파괴되었습니다. 언덕을 올라가면 리보니아 요새가 나오는데 거의 무너졌지만 경치는 아름답습니다. 우리 일정에는 경유로 되어있었으나 가이드가 선택해준 것으로 잘 구경했습니다. 돌 사이로 교회를 넣어서 사진을 찍으라는 포인트까지.....
 
 
타르투까지 갈 길이 먼데 도로 공사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공사를 진행하는데 우리보다는 현대적입니다. 양 방향 모두 사람이 안내를 하지 않고 신호등으로 안내합니다. 중간에 도로를 질러가는 소 떼까지 만났습니다.
 
 
 
이곳의 교차로는 속도를 낼 수 없도록 직진이 없습니다. 가운데를 돌아서 가도록 로타리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내는 그렇지 않지만.....
 
 
 
가이드님이 샌드와 에너지바를 1개씩 사주어 맛있게 먹으면서 7시가 되어서 타르투 시청 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시청 앞 광장 포토죤에서 인증샷을 찍고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감자와 푸딩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 후 타르투 대학교에 왔습니다. 야경이었지만 운치 있는 산책이었습니다. 수도 탈린은 정치 경제의 중심이고 타르투는 교육과 문화의 도시입니다. 1632년 스웨덴 국왕 아돌프 구스타프 2세가 설립하여 에스토니아에서는 가장 유서 깊고 유명한 대학입니다. 우리는 천사의 다리를 통과했습니다. 1838년 만들어진 다리인데 주변의 공원 모습이 영국식 이어서 다리도 ‘영국식 다리’로 이름이 붙여졌으나 에스토니아어로 영국이라는 단어와 천사의 단어 발음이 비슷하여 ‘천사의 다리’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천사의 다리를 숨을 쉬지 않고 소원을 빌면서 건너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도저히 그런 거리는 아니었습니다.
건너편에 보이는 다리는 악마의 다리입니다. 1913년 로마노프왕조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석조다리인데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이 다리가 만들어질 때 제정러시아의 지배가 시작 되었다는 설과 다리를 설계한 독일인의 성 의미가 악마라는 설 여러 가지가 있으나 천사의 다리 옆에 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하는 설도 있습니다.
 
 
둥근 쇠 덩어리에 새겨진 요한 쉬테(JOHAN SKYTTE 1577~1645)는 구스타브 2세의 어릴 때 가정교사이었는데 국왕을 설득하여 타르투 대학을 설립하게 한 인물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타르투 대학 역사 박물관이 나옵니다. 13~15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타르트 대성당 이었는데 개신교에 의해 파손되고 전쟁과 화재로 파괴되어 일부를 복원하여 도서관으로 사용하였으나, 1981년에 도서관도 옮기고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토메매기 언덕을 따라 가로등과 어우려진 단풍과 낙엽 길 덕분에 가을의 여인이 되어 보았습니다. 유리창이 크기와 위치가 달라 예술적인 건물을 지나 대학본관이 나오고 옆 건물의 벽에 타르투 대학에 재직한 대표 지성인들의 사진이 유리창에 장식되어 있습니다. 창문 제일 위에 있는 사진은 대학총장 교육부장관입니다. 언덕을 거의 다 내려오니 벽에 벽화가 있습니다. 타르투 대학교 철학학부 건물 벽에 그려진 타르투 대학교 본관 건물입니다.
언덕을 거의 다 내려오니 벽에 벽화가 있습니다. 타르투 대학교 철학학부 건물 벽에 그려진 타르투 대학교 본관 건물입니다.
 
 
다시 시청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18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 된 것으로 현재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시청 앞에 1998년에 마티 카르민이 제작한 ‘키스하는 학생상’이 분수대 동상으로 있습니다. 여학생의 키스 자세를 취하는 경연대회도 있다나.... 엉덩이를 뒤로하고 허리를 180도 꺾는 자세?
호텔 가는 길에 윌로 으운이 제작한 ‘아빠와 아들’ 조각상을 보았습니다. 작가의 아들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아빠와 키가 똑같게 하고 바닥에 그냥 서 있는게 인상적입니다. 호텔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오늘 밤 야경을 보고 내일 아침에 9시 30분까지 자유로 나와 관광하도록 하였습니다.
 
 
 
Dorpat Conference Hotel에 왔습니다. 버스 터미널이 있어 시끄럽거나 창문이 밝으면 커튼을 치고 자라고 안내 했지만 아주 좋았습니다. 복도 카펫에 방 번호가 확실히 써 있고 목욕탕의 수압이 제일 세고 실내 조명이 제일 밝은 호텔이었습니다. 바로 앞에 백화점(문은 닫힘)이 있고 Rimi 마켓이 있어 아주 좋았습니다. 더구나 8~23시까지 운영합니다.
 
 
 
7일차 2018.10.17.()
6시 모닝콜, 7시 아침 식사, 930분 출발
타르투 시가지 라크베르 성 호텔
 
아침을 먹고 에마여기 강가를 따라 시청광장으로 갔습니다. 어제의 야경을 다시 보기 위해서.....
오는 길에 마트에서 탄산수, 초크렛, 견과류를 사고, 버스 출발 전에 시장 구경도 잠깐 하였습니다.
 
 
9시 30분에 다시 가이드님과 함께 시청광장으로 다시 왔습니다.
지금은 포토존을 에마여기 강 위의 아치 다리로 돌려 찍었습니다. 아치가 돌아갑니다.
광장 바닥에는 타르투가 1030년에 만들어 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쇠판이 있습니다. 또 광장 오른쪽으로 기운집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한 바클레이드 드 톨리 (1761~1818)의 주택이었는데 1793년에 지었고 이 건물의 오른쪽은 성벽 터에 걸리고 왼편은 모래밭이었기 때문에 중심을 잃고 기운 것이라 합니다. 현재는 타르투 예술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더 이상을 기울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청을 지나 아일랜드 펍인 ‘빌데(Wide) 펍’ 아래 동상이 있는데 오른쪽은 에스토니아 타르투 출신 에두아르드 빌데(Eduard Wilde)이고 왼쪽은 아일랜드 출신 오스카 와일드(Oskar Wilde) 입니다. 두 사람은 생전에 알지 못했지만 동시대에 활동하고 성이 같다는 이유로 동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영국에도 동상이 있는데 에스토니아가 2004년 EU에 가입한 기념으로 아일랜드 골웨이에 기증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고지대 언덕을 넘어 타르투 천문대로 왔습니다. 1808~1810년에 크라우제(J.W.Kraese)에 의해 디자인 되고 건축되었습니다. 그 후 1818~1839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문학자 스투르베가 일 했던 곳이며 1839년 까지 유럽 최대의 천문대였습니다. 10~11월은 오픈시간이 11시라서 실내는 구경을 못하고 내려왔습니다.
 
 
2시간 정도 차를 타고 라크베레 성으로 갑니다. 가는 중에 또 도로 포장 공사를 만나 시간이 조금 지체 되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러 간 곳은 길가에 간판도 없는 곳인데 아주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경치도 너무 좋아 도로에 들어가 사진도 찍었습니다. 이런 곳을 어찌 알았는지 일행들이 궁금해 했습니다.
 
 
라크베르 성은 언덕에 지은 요새와 같은 성으로 이번 여행 중에 가장 유지가 잘되어 있었고 중세 에스토니아의 풍습을 알 수 있도록 꾸며져 있어 체험도 할 수 있도록 만든 곳입니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물소 ‘타르바스’가 왼쪽 언덕에 있는데 2002년 도시 건설 7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높이 3.5m 너비 7.1m 발틱 최고 크기로 라크베르성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가이드님과 방향이 다르게 성을 돌았서 조금 서성이면서 당황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막 나오려고 하던 가이드님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올라 갈 때의 성 밖 느낌과 성 안의 느낌은 완전히 다릅니다. 성 안의 안정되고 짜임새 있는 생활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성문을 열고 들어가면 기념품 상점이 있고 오른쪽 계단을 올라가면 체스가 있는 마당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일 층에는 중세의 교회 모습과 군사 물품 등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끼가 역사를 말해주 듯 계단을 2층을 가면 목조로 된 복도가 있고 1층이 다 내려다보입니다. 창문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고 밖을 경계 했을 듯 한데 모양이 제각각으로 멋이 느껴집니다.
 
 
 
올라가는 통로도 한사람만 들어갈 정도로 좁고 어두어서 밧줄을 잡고 올라가고 내려가는데 출입구를 잘 찾아야 합니다. 3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성벽 위로 올라가면 또 넓은 마당이 있고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이 날은 학생들이 체험을 와서 중세 복장한 사람이 설명하고 체험을 하게 하였습니다. 사람이 별로 없어 나도 말을 올라가 보았습니다. ㅋㅋㅋ
 
 
 
1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3시 30분 쯤 마지막 숙소인 나르바 Liivarand SPA Hotel에 도착했습니다. 스파 답게 침대 위에 가운이 올려져 있습니다. 호텔 바로 옆에 핀란드 만이 있어 짐만 내리고 바로 나갔습니다. 숲과 바다가 이어져 정말 한적하고 경치가 좋은 곳입니다. 이곳은 스파도 많고 개인 주택도 멋지게 가꾸어 놓았습니다. 목욕탕의 수건 걸이도 오른쪽 아래에서 전기를 끄고 킬 수 있어 성능이 아주 좋았습니다. TV는 LG!!!
 
 
4시 30분에 모여 30분 정도 차를 타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위치는 맞는데 식당이 없다고 가이드님이 이리저리 뛰어 다녔는데 언덕 밑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에스토니아와 러시아의 국경선인 다리를 지나가다 보니 멀리 보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호텔에 6시 30분쯤 도착했습니다. 이 호텔은 스파이기에 지하에 있는 시설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남편은 사우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혼자 수영복을 입고 내려가니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작은 미지근한 탕방, 건식방, 습식방이 있었습니다.
 
 
8일차 2018.10.18.()
5시 모닝콜, 6시 아침 샌드위치 준비, 640분 출발
여름 궁전 카잔 성당 이삭 성당 겨울 궁전 네바강 야경 공항
 
오늘은 국경을 넘어 가야하기 때문에 로비에 준비된 샌드위치 도시락 봉지를 받고 방에서 먹거나 버스에서 먹기로 하고 6시 40분 컴컴할 때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합니다. 가이드님이 로비에서 커피포트 빌려준다고 해서 일행분이 빌렸는데 아침에 나올 때 3유로를 내야한다고 합니다. 헐^*
7시 조금 넘어 국경선 버스 검문소에 도착했는데 1시간 15분 정도 걸려서 통과했습니다. 에스토니아 출국 확인하느라 여권사진 확인 후 걷어 가고 돌려주고, 러시아 입국 시 여권 사진 얼굴만 검열하고 여권에 확인도장 찍고, 도장 찍었나 확인하고...... 현대, 기아차 사무실이 보입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 궁전에 10시 10분쯤 도착했습니다. 나르바 호텔에서 3시간 30분 걸린 것입니다. 처음 공항에서 만났던 이마루 현지가이드와 다시 만났습니다. 계절이 가을이라 단풍이 예쁘게 들었습니다. 적당히 떨어진 풍경이 더 운치가 있습니다. 여름궁전은 9월 22일 폐막하였기 때문에 분수쇼를 볼 수 없고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1703년 표트르대제가 네바강의 하구에 세운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늪지대에 만든 도시로 유럽의 예쁜 점을 모아 만든 계획도시입니다. 1712년에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고 1924년 레닌이 죽은 이후 레닌그라드라고 부르다가 1991년 사회주의 개혁에 의해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여름궁전은 핀란드만에 위치해 있는데 1709년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호화로운 궁전을 건설하고자 시작하여 1725년 완성하였지만 현재의 바로크풍 장식은 1745년부터 10년간 장식 되었고 다시 1752년에 증축하여 호화로운 궁전이 되었습니다. 그 후 2차 세계대전 시 불탔지만 1958년에 복구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위정원, 아래정원, 대궁전으로 되어 있는데 위정원만 무료이고 2곳은 입장료를 내야 합니다. 두 공원에는 144개의 분수와 7개의 작은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름 궁전의 으뜸 삼손분수는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의 폴타바 전투 승리를 위하여 만든 분수라고 하는데 삼손이 사자의 입을 찢고 있습니다. 삼손은 러시아, 사자는 스웨덴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체스분수 앞 설명판에 땅 속에 무엇을 묻는 설명이 있는데 2차 대전 때 동상들을 땅에 묻어 두었던 것이랍니다.
 
 
아침을 간단히 먹어 출출 하던 차 이른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러시아식은 국 – 주식 – 디저트입니다. 국이 야채샐러드와 함께 나왔고 국과 스파게티가 맛이 좋았습니다.
 
 
카잔 대성당은 넵스키 대로에 위치해 있는 러시아 정교회로서 카잔의 성모라는 이콘을 모시고 있습니다. 제정 러시아의 귀족 가문인 스트로하노프 가문의 농노 출신 건축가 안드레이 니키포로비치 보로니킨이 설계를 맡아 1801~1811년에 완성했는데 광장에는 나폴레옹 전쟁의 승리를 기념한 쿠투조프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입구에 있는 돔의 높이가 80m에 달하는 성당이 아니고 박물관이나 궁처럼 광장의 전체를 타원형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내부는 의자 없이 여기저기에서 초를 올리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길 건너 상점 2층 화장실을 사용하고 카잔 대성당을 구경하기로 하였습니다. 상점이 어찌나 큰지 출입구를 못 찾을 정도였습니다.
 
 
 
성 이삭 성당으로 왔습니다. 주차를 하지 않고 분수 주변을 2바퀴 돌아서 외관만 보고 가는 줄 알았더니 주차 자리를 찾았나 봅니다. 내려서 외관만 보았습니다. 이삭성당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으로 표트르 대제를 위해 1818년 공사를 시작하여 40년간 지은 성당입니다. 붉은 화강암으로 된 대리석 기둥이 112개이고 지붕 돔에 금 100t이 사용되었다고 하며 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인군의 표적이 될까봐 회색으로 덧칠을 했다고 합니다. 광장에는 니콜라이 1세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말의 뒷발로만 세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패키지 여행의 별미 쇼핑을 갔다가 겨울궁전으로 왔습니다. 겨울궁전만 안내할 현지인 가이드가 오지 않아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광장 높은 탑 위에는 나폴레옹을 퇴치한 알렉산드르 1세가 십자가로 뱀을 짓누르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 광장은 1905년 1월 9일 노동자들의 평화 시위에 발포함으로써 ‘피의 일요일’이 시작된 곳으로 제정러시아의 혁명의 불길이 되었습니다. 맞은편 노란색 건물은 참모본부입니다. 우리가 주로 보는 것은 2층으로, 나라별로 전시된 작품과 아름 다운 궁전을 볼 수 있습니다. 2번째 방문임에도 너무 커서 어딘지 잘 몰라 이번엔 최대한 위치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궁전을 구경할 때는 방번호를 잘알고 들어 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두꺼운 옷과 가방을 들지 않아 검색대를 간단히 거치고 ‘요르단 계단’으로 올라왔습니다. 한글판 안내가 있어 좋았습니다. 이곳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예수를 기리기 위한 세례식이 네바 강에서 이루질 때 황실 가족이 이 계단으로 내려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황제를 만나기 위해 외교사절들이 오르내리던 계단이라 ‘대사의 계단’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에르미타주 궁전은 1754년에 시작해 1762년에 완성된 로코코 양식의 건물입니다. 이 궁전의 첫 번째 사용자는 예카테리나 2세였고, 이후 러시아 이월 혁명 때는 임시 정부 청사로 사용되다가 1971년 러시아 혁명 후 국립미술관이 되었으며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3대 박물관입니다. 1764년 예카테리나 2세가 겨울 궁전 옆에 소에르미타주를 짓고 황실에서 수집한 미술품들을 보관한 것으로 예카테리나 2세가 독일 상인에게 구입한 225점의 미술품으로 ‘비밀의 방’이라 하여 이 그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나와 쥐’ 뿐이라고 하였답니다. 이후 소장품이 늘어나자 겨울 궁전과 소에르미타주, 구에르미타주, 신에르미타주, 에르미타주 극장 등 5개동으로 건물을 연결하였습니다. 300만점에 이르는 미술품을 1분씩만 하루에 8시간을 보면 17년이 걸립니다. 지금은 1057개 중에서 400개 방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장군들의 사진이 있는 방을 지나 표트르 홀(소옥좌의 방)로 왔습니다. 3 장군이 있는데 첫째는 카잔성당 광장에 동상으로 서 있는 마하일 쿠투조프(Kutuzov)장군으로 1812년 나풀레옹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장군으로 오른눈에 부상을 입어 항상 왼쪽 얼굴의 모습만 나온답니다. 다음은 예카트리나 장군으로 백전 백승의 장군이었습니다. 마지막 포템킨 장군은 2년 가까이 예카테리나 2세의 연인이었으며 17년 동안 러시아 제국에서 가장 막강한 세력을 행사했습니다. 표트르 1세가 사용하던 방으로 왕관 쌍두 독수리 문장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안나 요안나브나의 작은 옥좌가 있어서 소 옥좌의 방이라고도 불립니다. 표트르와 함께 있는 여신은 미네르바로 로마 신화의 승리, 지혜의 여신입니다.
 
 
문장의 방입니다. 공개된 400개의 방중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하며 상들리에가 아주 화려하고 문 양옆으로 군기와 왕기를 등 석고상이 있습니다. 황실의 공식 행사가 열렸던 방입니다. 왼쪽에 무릎을 꿇고 않아 있는 병사는 뜨게옷을 입었습니다.ㅎㅎㅎ
다음은 1807년 사원 명칭을 받은 발쇼이 교회입니다. 검은 성모자상도 있습니다.
 
 
1812년 나폴레옹과의 조국 전쟁 당시 공을 세운 332명의 초상화가  있는 승전기념실입니다. 빈자리는 초상화가 완성되기 전에 죽은 사람이라 이름만 적혀 있습니다.
 
 
대 황제 홀, 성 게오르기의 방이라고 합니다. 성 게오르기가 용을 무찌르는 기마 부조상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게오르기는 4세기에 순교한 로마제국의 기사로 용에게 제물로 바쳐진 공주를 구했다는 설화에서 나왔습니다. 황제가 앉던 옥좌가 놓여 있고 쌍두 독수리상의 러시아 제국 문장이 옥좌 뒤에 있습니다. 16가지 나무색으로 바닥을 짜 맞추었고 천장은 금도금을 하였습니다,
 
 
통로를 지나는데 정원이 보입니다. 왕실의 사람들이 아래층까지 가지 않고도 정원을 볼 수 있도록 2층에 정원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템피스트리로 창문을 가렸다는데 꼭 스테인드 글라스 같아 보입니다. 멋진 모자이크 ‘4계절’ 원형 테이블을 지나 황금으로 만든 공작 시계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저 번 왔을 때 보다는 사람이 적어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18세기 후반 영국 금세공 장인이자 자동 기계 전문가 제임스 콕스의 작품으로 바닥 버섯, 도마뱀, 달팽이 다람쥐, 부엉이, 닭 등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본 그림은 조르조네의 ‘유디트’입니다. 유대민족을 구하기 위해 적장에 뛰어든 매혹적인 여인으로 앗시라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잘라 발 아래 밟고 있습니다. 유디트의 평온한 표정과 자세 손에 들고 있는 칼의 동작들이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두 번째 그림은 티티아노 베셀리오(Titiano Vecellio) 1554년 ‘다나에’입니다.
아르고스 왕은 딸 다나에가 낳은 외손자의 손에 죽을 것이란 신탁을 받고 다나에를 청동탑에 가두지만 다나에에 반한 제우스는 금화를 뿌려 영웅 페르세우스를 잉태하게 합니다. 결국 청년 페르세우스가 던진 원반에 왕은 죽게 되니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는 얘기이고 노파의 허리에 찬 열쇠가 주목됩니다.
 
 
 
다음은 레오나르도다빈치 2개 작품으로 ‘마돈나와 아이’입니다. 이탈리아어로 마돈나는 성모 혹은 성모 마리아로 해석되는데 왼쪽의 그림은 1865년 러시아 리타 백장이 기증하여 ‘리타의 성모’라고도 하며 말년 작품으로 원근법과 삼각형 구도가 잘 구성되어 안정감이 있으며 예수의 고통을 예감하는 성모의 눈빛과 예수가 쥔 방울새(십자가 예수의 가시를 뽑아주다가 머리에 붉은 반점이 생겼다는 상징새)는 앞으로의 다가올 수난을 짐작케 합니다. 오른쪽 그림은 1914년 러시아 마리아 베노아로부터 구입한 것이라 ‘베노아의 성모’라고 불리우는데 초기 작품으로 원근감이 떨어지고 성모와 아기 예수의 시선이 성모가 쥐고 있는 꽃잎이 네 개 달린 꽃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가 걸어갈 십자가의 길을 암시합니다.
 
 
다음은 폰토르모(Pontormo)의 ‘세례자 요한과 함께한 마돈나와 아이(The Holy Family with John the Baptist)’입니다. 르네상스 이후 메너리즘 시대의 그림으로 빨간색이 강열하고 방울새와 삼각형 구도 등을 강조했습니다.
리날도 리날디(Rinaldo Rinaldi)의 ‘댄서’ 조각입니다. 발과 치마의 선이 잘 나타났습니다.
 
 
라파엘의 스케치로 제작된 로지아(Loggia 1개면이 유리창으로 개방된 회랑)로 13개의 구약과 신약을 프레스코화로 그려 천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회랑의 끝 문위에 라파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다시 들어온 방은 지붕이 무척 화려합니다. 벽에 많은 그림이 있는데 유독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그림은 베네치아 화가 카날레토(1697~1768)가 그린 ‘프랑스 대사의 접견(1726~1730)’ 이라는 그림으로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살루테 성당을 배경으로 주변 경관과 두칼레 궁전과 광장, 귀족과 성직자와 일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을 섬세하게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음 4 작품은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그림입니다. ‘Mars and Venus’에서 전쟁의 신 마르스는 피로에 지쳐 돌아왔는데 어린 사티로스들이 장난스럽게 마르스의 투구와 말들을 가지고 놀고 있고, 사랑의 신 비너스는 사랑으로 감싸며 평화를 주려고합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The Descent from the Cross)’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에서 마리아의 눈물이 진짜처럼 흘러 내리고, 술의 신 ‘박카스(Bacchus)’에서 박카스는 술의 신으로 황제의 얼굴을 그렸다고 하며 술을 흘러서 어린아이가 마시게 하고 아이가 오줌을 함부로 누는게 흐트러진 인간의 모습을 최대를 그린 것 같습니다 ‘땅과 물의 화합(The Union of Earth and Water)’에서 대지의 여신 케레스는 과일과 꽃을, 물의 신 넵투누스는 삼지창을 들고 결혼의 여신으로부터 미르테 나무로 만든 화환을 받고 있습니다. 둘 사이에 쏟아지는 물은 대지를 적시고 바다로 흘러 세상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항아리는 다산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램브란드다나에’입니다. 황금빛이 감도는 방에 제우스를 향해 손짓을 하는 다나에의 수줍은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머리 위에 손이 묶어 울고 있는 큐피트가 있는데 이는 억압된 사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1985년 9월 15일 중년의 남성이 황산을 뿌리고 칼로 난자한 사건으로 12년의 복원 사업이 이루어졌고 그 후 이 박물관 출입이 강화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Descent from the Cross입니다. 중앙에 강렬한 빛이 비치고 예수를 소중히 감싸 안은 사람은 자신의 무덤을 내준 부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고, 사다리 뒤에서 얼굴이 빛나는 젊은이는 가장 사랑하던 제자 요한, 그 밑에 니고데모가 있고 화면 오른쪽 부축 받으며 졸도한 여인이 성모 마리아, 왼쪽에 예수를 따르던 여인들이 예수를 눕히려고 천을 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돌아온 탕자’입니다. 아버지의 사랑,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한 것으로 이 미술관에서 가장 사랑 받는 그림 중의 하나입니다. 아버지의 눈은 이미 아들 기다림으로 지친 듯 초점이 맞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유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작은 아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아버지와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큰 아들의 얼굴을 표현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왼손은 작고 부드러움이 어머니의 사랑을, 오른손은 크고 핏줄이 돋은 아버지의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삭발한 작은 아들은 태아의 머리를 나타내고 있으며 긴 검과 작은 검은 끝없는 견재를 나타냅니다.
 
 
폭풍 같은 구경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진짜인 것 같은 미이라도 보고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나왔습니다. 우리 현지 가이드와 현지인 가이드의 깃발^^..... 2번째 방문이지만 화려한 궁전과 엄청난 작품의 감상으로 머리가 띵한 것 같습니다. 이 방문을 정리하는 동안 많은 교양이 쌓아진 것 같아 흐뭇하기도 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선택 일정인 배를 타고 네바강의 야경을 보았습니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한국음식 육개장과 잡채를 먹으러 왔습니다. 마지막 식사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폴코보 공항에 20시 15분쯤 도착했습니다. 1시간도 수속이 걸리지 않아서 라운지에 있다가 23시 출발인 KE 0930을 타고 왔습니다. 대한 항공이 만석이 아니라 자리를 넉넉히 앉았지만 여행갈 때보다 올 때가 더 피곤한건 여행이 끝났슴이 아쉬운 탓일까요!!!
 
 
너무나 아름다웠던 발틱 가을 여행 이었습니다. 내가 얼굴을 다쳤을 때 치료해 주신 부산 자매팀과 약을 주신 선배님께 감사드리며 추억을 함께 해 주신 모든 일행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여행을 마치며
1. 부상 후 참좋은 여행사에 여행자 보험 처리에 대한 문의를 했는데 다음날 바로 답장을 해주어 여행을 마친 후 쉽게 보험 처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 후 병원에 가보니 광대뼈 골절이랍니다. 지금은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습니다.
 
2. 여행 기간 동안 가이드의 목이 아파서 목소리가 잘 안 나왔습니다. 설명을 너무 많이 하는 듯 보였습니다. 즐겁게 최선을 다하는 가이드의 모습이 좋았지만 걱정되는 마음으로..... 매뉴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3. 트라카이 성이 월요일 휴관입니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궁전도 10월에는 분수를 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단풍이 아름다워 절경을 보고 왔지만 그마저 떨어진다면..... 발틱의 여행일정에 참고하여야 할 듯합니다.
 
4. 여행 기간 중 대부분 식당에 갔을 때 식탁에 세팅이 항상 되어 있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고 룬달레 궁전식이 맛있었습니다.
 
5. 커피포트, 헤어린스가 없는 곳이 몇 군데 있었으나 호텔은 비교적 좋은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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